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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고기에서 고기다.

12.<소고기>맛있게 익히는 기술, 에이징

by 태정태세갑근세 2024. 2. 9.

드라이에이징
겉부분의 수분이 마르며 색이 변하지만 내부의 육즙이탈을 막아준다.

대한민국은 발효의 나라이다. 대표적으로 김치부터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시간이 지나면서 미생물에 의해 맛있게 익어가는 음식으로 식탁을 차린 나라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이른바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한국인들은 이제 고기도 시간을 들여 기다리게 되었다. 갓 잡은 고기를 좋아했던 옛 분들도 계시지만 안정성을 위해 검역 절차와 도축 절차를 지키는 만큼 갓 잡은 고기는 불법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 숙성이란 기술을 통해 더 맛있고 깊이 있는 고기를 즐겨 보아야 할 때다. 이번 편에선 가장 근본적인 숙성을 알아보고 더 맛있게 고기를 먹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웻 에이징(wet aging)

고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사체이다. 더 이상 피가 돌지 않고 세포가 살아 있지 않게 된 상태가 된다. 살아 숨 쉬지 않으니 근육이 굳고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말라가며 굳어 버린다. 이른바 사후경직이 일어나게 되는데 소나 돼지나 도축장에 도착한 뒤 죽인후에 방혈을 통해 피를 빼낸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내부에서 피가 굳고 근육으로 스며들어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소는 24시간, 돼지는 12시간이 지나면 사후경직이 시작되는데 이때 잡은 고기는 맹맛에 뻣하다. 그래서 숙성이란 시간을 통해 사후 경직이 풀릴때까지 기다린다.

 

습식숙성이라 하는 웻 에이징은 가장 기본적은 숙성 방법이다. 0~5도 사이의 온도에서 2주~3주 정도 넣어두고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된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산패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고기도 이 정도 온도에선 얼지 않는다. 필수 조건은 온도를 유지할 수있는 정온 유지 장치와 밀폐된 포장 방식이다. 진공 포장된 고기는 사후경직 시간이 지나 서서히 굳었던 근육이 풀리고 부드럽게 된다. 물론 진공포장 내에 핏물이 맺히기 때문에 흡수지를 같이 동봉하여 최대한 핏물을 잡아준다. 일반적인 소매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긴 하나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고 닫고 해야 해서 정온 유지는 매우 힘들다. 그리고 숙성 기간을 잘 지켜가며 파는 가게는 찾기 힘들다. 필자가 일해본 몇 군데의 가게들도 숙성육이라며 홍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선입선출은 지키는 편이나 숙성을 위한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고 물건이 나가는 데로 바로 꺼내와서 판매한다. 

 

소와 돼지를 직접 잡는 소매점에선 홍보용으로 발골 후 천장에 걸어 전시해 놓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날 잡은 고기가 제일 맛있다며 냉장고에 숙성된 고기를 찾기 보단 바로 잡은 거나 가장 최근에 잡은 것을 선호한다. 맛있고 맛없고는 개인의 취향이기에 다룰 일은 아니지만 맛보단 신선하다는 인식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다. 물론 후에 맛없었다고 따지러 오는 손님들도 존재한다. 

 

넓은 매장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냉장 설비를 새로 짤 수 없으니 냉장고에 넣다 꺼내기만 해도 숙성이란 이름으로 판매되는데 이런 방식은 언젠간 탈이 나기 쉽다. 이건 식당도 마찬가지다.

 

숙성고기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숙성에 대한 개념은 그냥 1~2주 정도 뒀다가 먹는 정도로 그쳤는데 언론에 소개가 되고 요리사가 나와 요리하는 프로그램이 늘면서 숙성에 대한 인지도가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식당이나 소매점에서도 자체 숙성을 위한 자구책이 나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워터 에이징이다. 

 

워터에이징은 말 그대로 진공포장된 고기를 수조에 넣어 둔다. 온도조절기가 달린 수조는 설정해 둔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며 물에 담두는 방식 때문에 장시간 담놔도 일반 냉장 진열식 웻에이징보다 핏물이 덜 빠져나오게 된다. 워터에이징의 단점은 진공포장이 뜯어지면 그대로 고기 안에 물이 차 물먹은 고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 수조를 밖에 두면 겨울철엔 얼기 쉽고 매장 내부에 두면 습기가 찬다. 이러한 단점도 있지만 정온 유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워터에이징은 가장 안정적인 대안이다. 이 외에도 해수를 이용한 워터에이징도 존재한다. 

 

웻 에이징 자체는 가장 기본이며 이후 설명할 드라이에이징 보다 쉽고 비용도 저렴하다. 신선한 고기만 찾는 것을 잘못 되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조금 더 맛있는 고기를 찾는다면 숙성을 염두해 두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2. 드라이 에이징(dry aging)

웻에이징과 다르게 겉면의 수분을 빠르게 증발시켜 굳게 만들고 내부에서 효소작용을 일으켜 맛과 풍미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설명만 길어지니 짧게 정리만 하겠다. 현대에 들어와선 드라이에이징을 위한 고가의 장비와 장소가 필요해졌지만 사실 과거엔 고기를 잡아 오래 먹기 위해 서늘한 곳에 말려 둔 방식이 모태이다. 드라이 에이징은 1~2도 정도 온도에서 70~80%의 습도를 유지하며 짧게는 4주~6주 길게는 1년 이상도 숙성시킨다.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말라가는 고기의 부위는 커지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해를 넘기지는 않는다. 겉면이 매우 단단해지고 완전히 마른 상태라 칼로 깎아 내듯이 벗겨내며 대부분 폐기한다. 어떤 식당에선 이 부분만 모아 튀김옷을 입혀 메뉴화 했다고 하는 데 따라 해 보았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버리는 부분이 많은 만큼 가격도 꽤 올라간다. 실제로 적게는 30% 많게는 50 %정도 버리게 되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 고기가 된다. 그래도 드라이 에이징이 잘 된 고기는 치즈 향이 나며 고기의 맛이 깊어진다. 필자는 현재도 드라이에이징 숙성육을 판매하고 있는데 한우 등심과 수입산 등심을 같이 숙성 시켜 판매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수입산 등심의 맛이 숙성 전과 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한우보다 저렴한 맛에 먹는 등심이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철저하게 4주 숙성을 지킨 결과물을 먹어보니 풍미와 부드러움이 매우 올라와 놀라워했다. 구울 때도 먹음직 스러운 갈색빛이 돌며 맛있는 구이의 향이 나오기 시작한다. 진정한 기다림의 맛이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렇다고 드라이 에이징이 저등급 고기를 고등급의 고기로 변화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드라이 에이징도 등급이 높은 고기로 하면 훨씬 더 맛이 있다. 다만 숙성의 기술을 통해 고기의 매력을 끝까지 끌어올려 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마치며 -

숙성이란 이제 한국의 고기 시장에서 필수로 자리잡혀 가고 있다. 물론 숙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는 곳도 있지만 사후경직이란 벽을 억로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맛있는 고기는 숙성을 뛰어넘어도 맛이 있을 것이다. 숙성이 만능이며 마법은 아니지만 고기의 맛을 끌어올리고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먹는 식문화를 만드는 것에 크게 기여하는 부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